본문 바로가기

[목요단상] 법이 능사는 아니지만

페이지 정보

작성자 미시령동서관통도로(주) 작성일23-02-03 08:52 조회686회 댓글0건

본문

계묘년 설날을 지나면서 주변에 희망찬 이야기가 넘치길 기대했다. 아직 코로나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질 못했지만 방역 수준을 다소 낮추는 정부의 조치와 중증환자가 아니라면 감기처럼 지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의 위로를 얻는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지난 명절도 부모님이 계신 요양병원에서 코로나 환자가 많이 발병하여 병원 원무과에서 면회를 금지해 부모님을 뵐 수 없었다. 설 당일에 부모님께 전화로 안부를 여쭈었지만 자식된 도리로서 여간 죄송스럽지 않았다. 부모와 지식은 뗄 수 없는 사이지만 자식의 도리를 다하고 산다는 것이 쉬운 것 같으면서도 다소 어렵다.

희망차야 할 새해에 내가 일하고 있는 터전으로 돌아와 보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맡고 있는 회사를 이끌어가면서 이해관계자와 협의할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그런데 각자의 입장과 상황에 따라 부딪히는 문제가 다른 양상을 띨 때 합의점을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요즘 나랏일을 하시는 위정자들을 보면 여야의 입장에서 '국민'을 앞세우지만 대승적인 면보다 당리당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로 보인다. 여야의 논쟁이 되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법을 변경해서라도 당론을 관철하겠다고도 한다.

정치도 이러하니 경제활동에 있어서도 상호 협의해 체결한 계약이 당초 예견했던 것과 달리 손실이 발생한다고 손해를 줄여 보겠다고 한다. 눈에 보이는 피해를 줄이려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 행위가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면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특히 입법한 법령을 소급적용하겠다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 법률 용어 중에 '법률 불소급의 원칙'이라는 말이 있다. 사후법의 금지 행위 당시 적법한 행위에 대하여 사후에 책임을 지우는 소급입법의 금지를 말한다. 또 다른 말로 '소급입법금지원칙'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법을 전공하는 분들이 명확한 사실을 뒤로한 채 명분을 얻으려는 측의 의견을 들어 그 행위를 부추기며, 법의 판결로 이를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갑, 을의 입장을 막론하고 부담스럽다.

올해 강원도는 미시령동서관통도로의 재정지원금을 예산편성도 하지 않았고 예상에 미치지 못하는 교통량을 근거로 실시협약변경을 하려는 뜻을 비추고 있다. 그래서 올해도 작년과 같이 멀게만 느끼던 일들이 법의 판단에 호소하며 자연스레 친근하게 지내게 생겼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상식이 아닌 송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힘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법의 판단에 의지하는 것밖에는 없다. 약자가 소송을 한들 돈과 시간이 없다면 타협을 하는 방법 외에 길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을 이용하는 것이 자신의 과오를 감추려는 강자의 전략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공정과 정의가 바로 서는 사회를 원한다. 특히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 억울한 피해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는 지극히 당연하다. 서로에게 위압적인 관계로 이루어진 계약이 아니라면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자유로운 경제 활동의 안전성이 보장될 때 공정한 사회로 가는 한 축이 완성된다고 본다.

세상이 누구나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서로가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면 공정한 잣대로 서로가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고, 상식적인 일이라면 억지를 쓰지 않아야 한다. 자신들에게 조금 더 유리한 방향을 찾고자 기본적인 틀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 내가 요양병원에 계신 부모님을 뵙고 싶다고 고집을 부린다면 내가 더 큰 피해를 입고 주변에도 피해를 줄 수 있다. 나의 행동도 이타적인 마음이 앞서야 한다. 영화 '곡성'에서 나온 '뭣이 중헌디?'라는 대사가 생각난다. 민주주의가 살아 숨쉬려면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틀은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

미시령동서 관통도로㈜ 대표 안찬주

출처 : 강원도민일보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